
대한항공 747-8i 프레스티지 탑승기 | 전 세계 48대, 2층 어퍼덱 비행
목차
14개 항목
중화항공 지연, 그리고 예상 밖의 대한항공 보잉 747-8i 프레스티지 클래스
비행기를 수십 번은 탔지만, 이날만큼 지연이 반가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2019년 11월, 태국에서 3년간 지내다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원래 일정은 중화항공(China Airlines) 비즈니스 클래스로 방콕(Bangkok) 수완나품 국제공항(Suvarnabhumi Airport)에서 타이페이(Taipei) 타오위안 국제공항(Taoyuan International Airport)을 경유해 인천공항(Incheon Airport)으로 들어가는 거였습니다. 수완나품 체크인 카운터에서 직원이 방콕-타이페이 구간 지연으로 타이페이-인천 연결편을 못 탄다고 알려줬을 때는 솔직히 좀 짜증이 났습니다. 자세한 건 타이페이 도착 후 안내하겠다는 말만 남기더라고요.

일단 타이페이행 비행기를 탔는데, 그 구간에서 중화항공 승무원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연 때문에 승객들이 다들 예민해져 있었거든요. 그런데 승무원들이 기내에서 연결편 관련 상황을 돌아다니면서 개별적으로 설명해주더라고요. 본인들 업무가 아닌데도 걱정하는 표정으로 "타이페이에서 꼭 해결될 겁니다"라고 해줬던 게 기억납니다. 덕분에 좀 마음이 놓인 상태로 타오위안 공항에 내렸고, 바로 중화항공 카운터로 갔습니다. 직원이 미안하다면서 대체편 티켓을 건네주는데, 받아보니까 대한항공(Korean Air) 보잉 747-8i 프레스티지 클래스(Prestige Class)였습니다. 대한항공의 프레스티지 클래스는 다른 항공사에서 말하는 비즈니스 클래스(Business Class)와 같은 등급입니다. 대한항공이 자체적으로 쓰는 브랜드명이에요. 어쨌든, 747-8i의 프레스티지라니. 지연에 대한 짜증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습니다.

전 세계 48대뿐인 비행기, 보잉 747-8i는 왜 특별한가
여기서 잠깐 이 비행기가 왜 특별한지 설명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보잉 747-8i(Boeing 747-8 Intercontinental)는 보잉 747 시리즈의 마지막 여객기 모델입니다. 747 하면 '하늘의 여왕(Queen of the Skies)'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항공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비행기인데, 그 최종 진화형이 747-8i입니다. 2012년에 루프트한자(Lufthansa)가 처음 상업 운항을 시작했고, 대한항공은 전 세계에서 이 기종을 가장 많이 보유한 항공사 중 하나였습니다. 2019년 당시에는 10대를 운용하고 있었고요.
근데 이 비행기가 진짜 희귀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보잉은 747-8i 여객형을 전 세계 통틀어 48대만 만들고 2017년에 생산을 완전히 종료했습니다. 앞으로 새로 만들어질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제가 탑승했던 2019년에도 이미 희귀한 기종이었는데, 이 글을 정리하고 있는 2026년 현재 상황은 더 극적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지금 이 비행기에 일반 승객으로 탑승할 수 있는 항공사는 전 세계에 딱 3곳뿐입니다. 루프트한자(Lufthansa) 19대, 에어차이나(Air China) 7대, 대한항공(Korean Air) 약 5대. 그게 전부예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한항공이 10대를 굴렸는데, 5대를 매각하면서 급격히 줄었습니다. 그 매각된 5대가 어디로 갔는지는 좀 놀라운 이야기인데, 글 마지막에 다시 하겠습니다.
747-8i는 민간 항공사뿐 아니라 각국 정부 전용기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전용기 '공군 1호기(Code One)'가 대한항공의 747-8i를 장기 임차한 기체이고, 미국의 차세대 에어포스원(Air Force One)인 VC-25B도 747-8 기반으로 현재 제작 중입니다. 이 외에 브루나이(Brunei), 모로코(Morocco), 쿠웨이트(Kuwait), 터키(Turkey) 정부도 747-8i VIP 사양을 국가 원수 전용기로 쓰고 있고, 카타르(Qatar) 왕실이 보유했던 1대는 2025년 트럼프 대통령에게 선물되어 임시 에어포스원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이 비행기는 일반인이 탈 수 있는 여객기이면서 동시에 세계 각국 정상들의 하늘 위 집무실이기도 한 겁니다. 이런 비행기를 항공편 지연 대체편으로 타게 됐으니, 그날 제 운이 어땠는지 대충 짐작되실 겁니다.
보잉 747-8i, 얼마나 희귀한 비행기인가
총 생산 대수 (여객형): 전 세계 48대 — 이후 생산 종료 (2017년)
2026년 현재 여객 운항 항공사: 루프트한자 19대 / 에어차이나 7대 / 대한항공 약 5대 — 전 세계 단 3개 항공사
정부 전용기 운용국: 대한민국 (공군 1호기), 미국 (VC-25B 제작 중), 브루나이, 모로코, 쿠웨이트, 터키, 카타르 왕실
별명: Queen of the Skies (하늘의 여왕) — 보잉 747 시리즈의 마지막 여객형 모델
출처: Simple Flying, Gate Checked, Wikipedia, Planespotters.net, 각 정부 공식 발표 기준 (2026년 4월)
대한항공 보잉 747-8i 프레스티지 클래스(Prestige Class) 주요 스펙
기종: Boeing 747-8 Intercontinental (747-8i)
총 좌석: 368석 (퍼스트 6석 / 프레스티지 48석 / 이코노미 314석)
어퍼덱 프레스티지 배열: 2-2 스태거드 (약 22석)
메인덱 프레스티지 배열: 2-2-2 (약 26석)
시트 피치(Seat Pitch): 75인치 / 191cm
좌석 폭(Seat Width): 21인치 / 53cm
침대 모드 길이: 약 72인치 / 183cm
리클라인: 180도 풀플랫(Full-Flat)
좌석 제조사: B/E Aerospace (현 Collins Aerospace)
모니터: 17인치 HD 터치스크린 + 리모컨 내장 보조 화면
전원: 110V AC 콘센트 + USB-A 포트
출처: SeatMaps.com, Business Traveller, 대한항공 공식 사이트 기준

보잉 747-8i 탑승, 어퍼덱으로 올라가는 계단
탑승구에서 비행기에 올라 앞문(L1 도어)으로 들어갔습니다. 문을 지나는 순간 특유의 기내 냄새가 확 올라왔는데, 새 비행기 냄새랑 기내식 준비 냄새가 섞인 그 느낌입니다. 비행기를 자주 타는 사람이면 알 텐데, 이 냄새를 맡으면 '아 진짜 타는구나' 하는 실감이 와요. 들어서면 바로 1층 메인덱(Main Deck)의 프레스티지 구간이 보이는데, 제 자리는 2층 어퍼덱(Upper Deck)이었습니다. 메인덱 프레스티지 구간을 지나 뒤쪽으로 걸어가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옵니다. 보잉 747의 상징과도 같은 이 계단을 올라가는 순간이 꽤 기분 좋았습니다. 이때 대한항공은 아직 기내 인테리어 리뉴얼 전이었기 때문에, 지금 대한항공을 타는 분들이 보면 색감이 좀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진한 파란색과 베이지 톤이 깔려 있었어요.

대한항공 747-8i 어퍼덱 프레스티지 클래스 좌석, 첫인상
어퍼덱에 올라와서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창가 좌석이었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담당 승무원이 다가와서 인사를 했는데, 이름을 불러주면서 "오늘 저희 비행기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더라고요. 대체편으로 갑자기 배정된 승객인데도 마치 원래 예약한 손님처럼 대해줬습니다. 바로 직전에 중화항공 승무원들의 따뜻한 응대를 받고 온 상태라, 그날 유독 항공사 서비스라는 게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 항공사든 대만 항공사든, 아시아 항공사 승무원들의 이 미소는 뭔가 다릅니다. 외국인 친구들이 한국 항공사를 좋아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 첫 번째로 승무원 서비스를 꼽거든요.
어퍼덱의 대한항공 프레스티지 클래스는 2-2 스태거드 배열로 약 22석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메인덱의 2-2-2 배열과 비교하면 한 줄에 좌석이 2개 적은 셈이라, 확실히 여유롭고 조용합니다. 앉는 순간 공간이 넓다는 게 바로 느껴졌습니다.

시트 피치 75인치, 퍼스트 클래스와 체감 차이가 크지 않았다
과장 없이 시트 피치 75인치(191cm)는 앉아만 있어도 다리가 아무 데도 닿지 않는 수준입니다. 예전에 마일리지를 모아서 대한항공 퍼스트 클래스를 탄 적이 있는데, 그때와 체감 차이가 크지 않았습니다. 퍼스트 클래스의 시트 피치가 83인치(211cm)이니까 숫자상으로는 8인치 차이가 나지만, 프레스티지에서도 다리를 완전히 뻗고 앞 발판에 올려놓을 수 있어서 체감상의 차이는 그보다 적었습니다. 게다가 바로 직전에 탔던 중화항공 보잉 777-300ER 비즈니스 클래스의 감각이 몸에 남아 있던 상태라, 747-8i 어퍼덱에 앉았을 때 넓이 차이가 확 와닿았습니다.

다리를 쭉 뻗어봤는데 끝에 닿지 않았습니다. 키 178cm 기준입니다. 비행 내내 이 자세로 영화를 보면서 갔는데, 2시간이 아깝게 느껴지는 좌석이었습니다.

창문 4개 독차지, 어퍼덱 창가석의 진짜 장점
창가 좌석의 또 다른 장점은 창문 개수입니다. 제 자리 옆에 창문이 4개 있었습니다. 이코노미에서는 한 좌석에 창문 하나가 배정되면 운이 좋은 건데, 여기는 4개를 혼자 쓰고 있으니까 시야가 넓었습니다. 어퍼덱 창가석은 보잉 747 특유의 곡선형 벽면 때문에 아늑한 느낌도 있고, 벽면 아래쪽에 깊은 개인 수납 공간이 생기는 것도 장점입니다. 백팩 하나 정도는 넉넉하게 들어가는 크기였습니다.

출발 전 타오위안 공항 풍경이 창문 너머로 보였습니다. 활주로 조명이 깔린 야경이었는데, 네 개 창문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공항 풍경을 보고 있으니까 비행기 지연으로 짜증났던 건 이미 까맣게 잊은 상태였습니다.

아 그리고 이건 사소한 건데, 금연 표시와 좌석벨트 사인등입니다. 비행 중 난기류는 예고 없이 오기 때문에 사인이 꺼져도 벨트를 풀지 않는 걸 권장합니다. 솔직히 이 표시등 디자인은 좀 촌스러웠습니다. 2019년에 탄 비행기인데 이래도 되나 싶었어요. 에어버스 A350이나 보잉 787 같은 신형 기종에서는 창문 자체가 전자식 디밍(Dimming)이 되면서 표시등도 세련되게 바뀌었거든요. 747-8i가 보잉 747 시리즈의 마지막 모델이긴 하지만 기본 설계가 1960년대에서 출발한 기종이라, 이런 부분은 어쩔 수 없습니다.
대한항공 기내 엔터테인먼트와 리모컨 내장 에어쇼(Air Show)

좌석 옆에 리모컨이 줄로 연결되어 붙어 있었습니다. 프레스티지 클래스는 시트 피치가 넓다 보니 모니터까지 손이 안 닿아요. 17인치 HD 터치스크린이 달려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 리모컨으로 조작하게 됩니다.

대한항공 기내 엔터테인먼트(In-Flight Entertainment) 시스템 화면입니다. 2019년 당시 인터페이스라 지금과는 다를 수 있는데, 영화, 음악, 게임 등 콘텐츠 양은 충분했습니다.

리모컨에 별도 화면이 내장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에 에어쇼(Air Show)가 표시돼서 현재 비행기 위치를 실시간으로 보여줍니다. 앞에 있는 큰 모니터로는 영화를 틀어놓고, 손에 든 리모컨 화면으로는 비행 경로를 확인하는 식으로 쓸 수 있었습니다. 타이페이를 출발한 직후라 대만(Taiwan) 섬 윤곽이 또렷하게 보이더라고요.

오키나와(Okinawa)를 지나고 제주(Jeju) 근처까지 오는 경로가 실시간으로 뜹니다. 이걸 보면서 문득 3년 전에 한국을 떠날 때 탔던 비행기가 생각났습니다. 그때는 이코노미 맨 뒷줄이었는데, 지금은 보잉 747 어퍼덱 프레스티지에서 같은 경로를 역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으니까 묘했어요.

타이페이(Taipei)에서 인천(Incheon)까지 가는 전체 비행 경로입니다. 속도, 고도, 도착지까지 남은 거리 정보도 같이 나와서, 비행기를 자주 타는 사람이라면 이런 디테일이 반가울 겁니다.

좌석에 비닐 포장된 헤드셋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비행시간이 짧다 보니 뜯지도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비행기에서 영화보다 에어쇼 화면 보는 게 더 재밌는 사람이라 크게 아쉽지는 않았어요.
어두운 기내에서 빛나는 개인 독서등

이건 좀 의외로 좋았던 부분인데, 야간 비행이라 기내 조명이 전부 꺼져 있었거든요. 좌석에 달린 개인 독서등을 켜봤는데, 내 공간만 은은하게 비추고 옆 좌석까지 빛이 번지지 않게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어두운 기내에서 이 조명 하나만 켜놓으면 꽤 아늑합니다. 프레스티지라서 이런 건지, 747-8i라서 이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이코노미의 독서등과는 느낌이 달랐어요.
180도 풀플랫 시트(Full-Flat Seat), 대한항공 프레스티지 클래스의 핵심

프레스티지 클래스의 핵심은 풀플랫 시트(Full-Flat Seat)입니다. 좌석 옆 조절 버튼으로 등받이 각도, 다리 받침, 전체 눕힘까지 세밀하게 조정할 수 있습니다. 비즈니스 클래스(Business Class)라도 기종이나 항공사에 따라 완전히 수평으로 눕혀지지 않고 약간 각도가 남는 앵글드 플랫(Angled-Flat) 좌석이 있는데, 대한항공 747-8i 프레스티지는 180도 완전 수평입니다. 침대 모드 길이가 약 72인치(183cm)라서 웬만한 성인 남성도 다리를 펴고 누울 수 있습니다. 눕힐 때 모터 소리가 윙 하고 나면서 등받이가 천천히 내려가는데, 다 내려가기까지 한 10초 정도 걸렸던 것 같습니다. 완전히 수평이 되고 나서 등을 대보니까 쿠션감이 꽤 있었어요. 딱딱하지 않았습니다. 비행시간이 2시간 남짓이라 제대로 자보지는 못했지만, 장거리 노선이었으면 확실히 숙면이 가능한 구조였습니다.

실제로 눕힌 모습입니다. 담요 덮고 모니터 틀어놓으니까 비행기 안이라는 걸 잠깐 잊을 만한 편안함이었습니다.

어퍼덱 창가 좌석 아래에 있는 개인 전용 수납 선반입니다. 보잉 747 어퍼덱 특유의 곡선 벽면 덕분에 이 공간이 생기는 건데, 자주 꺼내는 물건을 여기에 넣어두면 일어나서 오버헤드 빈(Overhead Bin)을 열 필요가 없어서 편합니다.
대한항공 프레스티지 클래스 기내식, 시그니처 비빔밥(Bibimbap)

이륙하고 좌석벨트 사인이 꺼지자마자 승무원이 음료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음료 뭐 드릴까요?"가 아니라 메뉴판을 따로 가져와서 고를 수 있게 해줬는데, 단거리 노선인데도 이 절차를 생략하지 않더라고요. 오렌지 주스를 부탁했더니 잔에 담아서 냅킨과 함께 내려놓는데, 동작 하나하나가 깔끔했습니다. 기내식도 바로 이어서 시작됐습니다. 먼저 따뜻한 물수건이 나왔습니다.

대한항공 프레스티지 클래스라도 단거리 노선은 기내식이 간소합니다. 장거리 노선에서 나오는 전채-메인-디저트 코스와는 확실히 차이가 있습니다. 이날은 대한항공의 시그니처 메뉴인 비빔밥(Bibimbap)을 골랐습니다.

비빔밥 나물이 개별 용기에 담겨서 나왔습니다. 애호박, 콩나물(Bean Sprouts), 시금치(Spinach), 버섯(Mushroom), 도라지(Balloon Flower Root), 고사리(Bracken Fern), 그리고 고기까지. 고추장(Gochujang)을 넣고 비벼 먹는 방식입니다. 승무원이 세팅해주면서 "고추장 많이 드시는 편이세요?"라고 물어봤는데, 이런 한마디가 기내식을 그냥 배식이 아니라 식사처럼 느끼게 해줍니다. 기내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나물 상태가 꽤 괜찮았는데, 솔직히 바로 전에 탔던 중화항공 비즈니스 기내식과 비교하면 구성 자체는 아쉬운 편이었습니다. 다만 중화항공은 약 4시간 구간이었고 이쪽은 2시간 남짓 단거리이니 직접 비교는 공정하지 않습니다.

밥은 대한항공 전용 즉석밥으로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즉석밥이라 좀 의아했는데, 밥알 상태가 일정하고 찰져서 오히려 기내 조리밥보다 나았습니다. 대한항공 장거리 노선 비빔밥에서도 동일한 방식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비빔밥과 함께 나온 반찬, 그리고 황태국(Dried Pollack Soup)
반찬으로는 김(Gim / Korean Roasted Seaweed), 양파장아찌(Pickled Onion), 무생채(Spicy Radish Salad)가 나왔습니다. 비빔밥에 김을 부셔 넣으면 고소해지고, 양파장아찌의 새콤한 맛이 입안을 정리해줍니다. 무생채는 아삭하고 매콤해서 밥 반찬으로 딱이었어요. 외국인 승객들도 이 김을 꽤 좋아한다고 합니다.




국은 황태국(Dried Pollack Soup)이었습니다. 맑고 담백한 국물이 비빔밥과 잘 맞았습니다. 전체적으로 가벼운 한 끼 구성이었는데, 단거리 노선치고는 따뜻한 식사가 나온 것 자체가 감사한 수준입니다. 후쿠오카(Fukuoka) 같은 초단거리 노선은 프레스티지여도 콜드밀(Cold Meal), 그러니까 차가운 식사만 제공되거든요.
인천공항 도착, 3년 만에 밟는 한국 땅

비빔밥 먹고 나니까 슬슬 졸음이 오더라고요. 조명도 꺼졌습니다. 좌석을 눕히고 눈을 감았는데, 정말 잠깐 잤을 뿐인데 눈을 뜨니 이미 제주도 상공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아쉬웠습니다. 이 좌석에서 10시간쯤 더 비행하고 싶었는데, 현실은 2시간 남짓 단거리입니다.

창밖으로 한국 도시의 야경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태국에서 3년 만에 돌아오는 거라 이 불빛들이 그냥 반가웠습니다.

인천공항에 남쪽에서 접근할 때 항상 보이는 풍경입니다. 바다 건너편으로 주황빛 불빛이 깔리고, 그 너머로 도시 야경이 펼쳐집니다. 인천공항에 올 때마다 보는 광경인데 익숙해지지 않아요. 드디어 한국이라는 실감이 이때 왔습니다.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이 탑승기의 비행 정보 요약
탑승 시기: 2019년 11월
구간: 타이페이 타오위안(TPE) → 인천(ICN)
항공사: 대한항공(Korean Air) — 중화항공(China Airlines) 지연에 따른 대체편
기종: Boeing 747-8 Intercontinental (747-8i)
클래스: 프레스티지 클래스(Prestige Class / Business Class)
좌석 위치: 2층 어퍼덱(Upper Deck) 창가
비행시간: 약 2시간 30분
비행 시간대: 야간
기내식: 비빔밥(Bibimbap) + 황태국(Dried Pollack Soup)
6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비행을 돌아보며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2026년입니다. 탑승한 지 6년이 넘었는데, 지금 와서 이 후기를 정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때 탔던 대한항공 747-8i가 이제 곧 하늘에서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그냥 운 좋게 좋은 자리에 앉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비행이 얼마나 특별한 것이었는지 점점 깨닫게 됐어요. 전 세계에 48대밖에 없는 비행기의 2층 비즈니스 클래스를 지연 대체편으로 경험했으니까요.
대한항공 승무원 서비스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날 중화항공 승무원도, 대한항공 승무원도, 단순히 친절한 게 아니라 진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신경을 쓴다는 느낌이었거든요. 한국 항공사들이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가 비행기를 직접 타보면 체감됩니다. 실제로 대한항공은 그 이후에도 스카이트랙스(Skytrax) 5성 항공사 등급을 5년 연속 유지했고, 2026년에는 APEX 최우수 객실 서비스상(Best Cabin Service)까지 수상했습니다. 제가 2019년 대체편에서 느꼈던 그 서비스의 질이, 일회성이 아니라 이 항공사의 기본이었다는 걸 이런 수상 기록이 증명해주는 셈입니다.
어퍼덱의 2-2 배열에서 오는 여유로운 공간, 창문 4개를 독차지하는 창가석, 75인치 시트 피치에 180도 풀플랫까지. 단거리라 2시간 남짓한 비행이었지만 그 짧은 시간이 아깝게 느껴질 만큼 좋았습니다.
아쉬운 점을 꼽자면 두 가지입니다. 비행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것, 그리고 단거리 노선이라 기내식이 간소했다는 것. 만약 이 좌석으로 미국이나 유럽행 장거리를 탈 수 있었다면 풀코스 기내식에 8시간 수면까지 경험했을 텐데, 그건 다음 기회로 남겨둬야 했습니다.
대한항공 747-8i의 퇴역, 그리고 미국 '최후의 날 항공기(Doomsday Plane)'로의 전환
그리고 그 다음 기회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대한항공은 2025년부터 747-8i의 본격적인 퇴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4년 5월, 대한항공은 보유한 747-8i 중 5대를 미국 방위산업체 시에라 네바다(Sierra Nevada Corporation)에 약 6억 7,400만 달러(한화 약 9,200억 원)에 매각했습니다. CNN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이 5대는 미 공군의 E-4B '나이트워치(Nightwatch)'를 대체하는 차세대 '최후의 날 항공기(Doomsday Plane / Survivable Airborne Operations Center)'로 개조됩니다. 핵전쟁 등 국가 비상사태 시 '공중 펜타곤(Airborne Pentagon)' 역할을 하는 비행기입니다. 한때 일반 승객들이 비빔밥을 먹으며 영화를 봤던 비행기가, 이제는 미국의 국가 생존 작전 항공기로 다시 태어나는 겁니다. 내가 탔던 바로 그 기체 중 하나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묘한 기분이 들어요.
2024년 12월부터는 인천-애틀랜타(Atlanta) 노선 등에서 777-300ER로 기종 교체가 시작됐고, 남은 기체도 순차적으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1대는 대한민국 대통령 전용기(공군 1호기 / Code One)로 임차 중이고요.
대한항공 보잉 747-8i 퇴역 타임라인
2012년: 대한항공, 747-8i 도입 시작 (총 10대)
2021년: 조원태 회장, FlightGlobal 인터뷰에서 "747-8i를 10년 내 퇴역"시키겠다고 발표
2022년 1월: 1대를 대한민국 대통령 전용기(공군 1호기 / Code One)로 장기 임차
2024년 5월: 5대를 미국 시에라 네바다(Sierra Nevada Corp.)에 약 9,200억 원에 매각 — 미 공군 '최후의 날 항공기(Doomsday Plane)'로 개조 예정
2024년 12월: 인천-애틀랜타(ATL) 등 일부 장거리 노선에서 777-300ER로 기종 교체 시작
2025년 3월: 추가 노선에서 747-8i 대체 운항 시작
2026년 4월 기준: 대한항공 여객 운용 약 5대, 대통령 전용기 1대
출처: FlightGlobal, Gate Checked, Simple Flying, CNN, YTN, 뉴스토마토 등 보도 기준
'하늘의 여왕' 보잉 747의 시대가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747-8i를 여객기로 운항하는 항공사가 루프트한자(Lufthansa), 에어차이나(Air China), 대한항공(Korean Air) 단 3곳뿐이고, 대한항공의 보유 대수도 계속 줄고 있습니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더 이상 탈 수 없는 비행기에 대한 기록으로 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아직 대한항공 747-8i가 운항 중인 노선이 남아 있다면, 탈 수 있을 때 타보시길 권합니다. 특히 어퍼덱 창가석은 다른 어떤 항공기에서도 대체할 수 없는 경험입니다. 보잉 747이 하늘에서 사라지고 나면, 이 2층 구조를 가진 대형 여객기는 에어버스 A380(Airbus A380)뿐인데, 그것마저도 퇴역이 진행 중이니까요. 747 어퍼덱에서 창문 4개를 혼자 독차지하면서 비행하는 경험. 이게 가능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다음에는 제 돈 주고라도 한 번 더 타고 싶은데, 그때까지 비행기가 남아있을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