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국 라용 숨겨진 정원 카페 The Creeper House | 3년 거주자의 방문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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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라용, 정원 속 카페 더 크리퍼 하우스(The Creeper House)
태국 라용(Rayong)에 있는 더 크리퍼 하우스(The Creeper House)는 지금 구글 지도에 임시휴업(temporarily closed)으로 뜨는 카페예요. 영업 재개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이 카페가 가지고 있던 분위기만큼은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어서 이 글을 씁니다.
나는 라용에서 3년 정도 살았어요. 와이프 직장이 라용에 있어서 따라간 건데, 살다 보면 주말마다 갈 곳이 필요하잖아요. 라용은 방콕이나 치앙마이처럼 카페가 유명한 도시는 아니에요. 오히려 그래서 이런 곳이 숨어 있었던 것 같아요. 관광지가 아닌 동네에, 가이드북에도 안 나오는 라용 카페가 하나 있고, 거기가 놀라울 정도로 좋았다는 이야기예요.
더 크리퍼 하우스는 와이프가 찾아낸 곳이에요. 어느 주말에 "여기 가보자"고 해서, 집에서 차로 40분 정도 달려갔어요. 라용의 도로 사정이 한국과는 많이 다르거든요. 태국은 좌측통행이라 그것부터 적응이 안 되고, 도로 상태도 구간마다 차이가 커서 40분이 체감상 훨씬 길게 느껴져요. 태국에서 직접 운전해서 카페를 다니려는 분들은 이 부분을 꼭 감안하세요.
더 크리퍼 하우스 입구 — 카페인지 식물원인지

도착하면 먼저 이게 카페인지 의심하게 돼요. "HOUSE PLANT"라고 적힌 초록색 삼각지붕, 유리문 하나, 그리고 건물 벽면 전체를 덮고 있는 덩굴식물. 식물원 입구라고 해도 믿을 풍경이에요. 옆에 빈티지 가로등이 하나 서 있고, 그 아래 칠판 간판에 "Cafe in HOUSE PLANT OPEN"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이걸 안 봤으면 그냥 지나쳤을 거예요. 문 앞에 흰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는데, 누가 심은 게 아니라 그냥 자란 거예요. 태국 카페가 무서운 게 이런 거예요. 일부러 꾸미지 않아도 자연이 알아서 분위기를 만들어 놓으니까.
참고로 주차는 걱정 안 해도 돼요. 태국의 카페나 식당은 대부분 주차 공간이 넉넉해요. 한국처럼 "주차 가능한가요?" 하고 미리 확인할 필요가 거의 없어요. 땅이 넓으니까 가게 앞에 차 세울 공간이 자연스럽게 있고, 없으면 도로변에 세워도 돼요. 태국에서 차로 카페를 다닐 때 가장 편한 점 중 하나예요.

안으로 들어서면 나무 이정표가 하나 서 있어요. 위쪽에 "The Creeper House", 아래쪽에 "House Plant"라고 적혀 있고, 화살표가 각각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요. 카페 안에 구역이 나뉘어 있다는 뜻인데, 이 간판 앞에서 사진 안 찍고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어요.
야외 정원 좌석 — 태국 카페의 진짜 매력

하얀 자갈이 깔린 야외 정원에 철제 테이블 두세 개. 나무와 덤불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고, 왼쪽 돌 화단에는 노란 꽃, 나무 그늘 아래에는 흰색 철제 벤치가 하나. 좌석이라고 해봐야 서너 테이블인데, 오히려 그게 정원 안에 앉아 있는 느낌을 줘요.
여기 앉았어요. 구름이 좀 껴 있어서 언제 스콜(squall, 열대성 소나기)이 쏟아질지 모르는 날씨였는데, 덕분에 한낮인데도 앉아 있을 만했어요. 태국 카페를 야외에서 즐기려면 쾌청한 날보다 이렇게 살짝 흐린 날이 오히려 나아요.
이런 풍경은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서는 만들기 어려워요. 건물 자체가 정원이고 정원 자체가 카페인 구조는 일 년 내내 따뜻한 기후가 아니면 유지가 안 돼요. 한국도 야외 좌석이 있는 카페가 많지만, 겨울이 영하로 떨어지는 나라에서 야외 좌석은 봄가을 한정이에요. 여름은 또 다른 문제예요. 한국의 한여름은 태국 송크란(Songkran) 시즌만큼 덥고, 태국은 우기(rainy season)에 매일 스콜이 내려서 열기를 식혀주는 반면, 한국은 장마철 빼면 비 없이 열기만 계속돼요. 결국 에어컨 빵빵한 실내로 들어가게 되는 거고, 그래서 한국 카페는 실내 중심으로 발전한 거예요. 부럽다기보다는, 기후가 다르면 공간도 달라지는구나 하는 걸 살면서 체감했어요.
베이커리 쇼케이스 — 온실 안의 케이크

안쪽으로 들어가면 베이커리 쇼케이스가 나와요. 청록색 벽에 전구 줄 조명이 나뭇가지를 타고 감겨 있고, 쇼케이스 안에 케이크들이 층층이 놓여 있어요. 옆 칠판 간판에 태국어로 주문 안내가 적혀 있고, "Order & Pay"라고 쓰여 있었는데 선주문 방식이에요. 왼쪽 벽에 "SUGAR LEVEL" 표도 붙어 있었어요. 실내인데도 철제 격자 사이로 덩굴이 늘어져 있어서 밖과 안의 경계가 모호해요. 카페라기보다 온실 안에 케이크를 갖다 놓은 것 같은 느낌.

쇼케이스를 가까이서 보면, 나무 원판(wood slice) 위에 케이크 조각이 하나씩 올라가 있고, 각 조각마다 투명 필름으로 감싸져 있어요. 위쪽 선반에는 선인장 화분이랑 케이크가 같이 놓여 있었는데, 진열 자체가 작은 정원 같았어요. 딸기 케이크, 허니콤 케이크, 초콜릿 계열까지 종류가 꽤 많았어요.
시그니처 케이크 — 허니콤, 치즈 초콜릿 체리, 캐럿

시그니처 케이크(Signature Cake)라고 적힌 허니콤 케이크. 크림치즈 위에 벌집 꿀(honeycomb)이 통째로, 그 옆에 로즈마리 가지 하나. 조명 아래서 벌집의 노란 꿀이 반투명하게 빛나고 있었어요. 쇼케이스 앞에서 한참 서 있었어요. 이걸 시켰는데, 뒤에서 자세히 쓸게요.

시그니처 02번, 치즈 초콜릿 체리(Cheese Chocolate Cherry). 태그에 적힌 재료가 블랙 체리, 덴마크산 오가닉 치즈 초콜릿(Organic Cheese Chocolate from Denmark), 생블루베리, 생체리, 석류, 카카오 크림, 초콜릿 버터. 가격 175바트. 재료 목록만 보면 동네 카페 수준이 아니에요. 이건 먹지는 않았어요.

시그니처 01번, 캐럿 케이크(Carrot Cake). 크림치즈 프로스팅에 당근 시트, 호두, 시나몬, 넛맥, 위에 믹스넛이 수북하게 올라가 있어요. 165바트, 한국 돈으로 약 7,755원(약 $4.7 USD). 태국에서 로컬 식당 한 끼가 50~60바트인 걸 생각하면 케이크 한 조각이 밥 세 끼 값이에요. 태국 물가 기준으로는 분명히 비싸요. 이것도 먹지는 않았고, 쇼케이스에서 사진만 찍었어요.

같은 캐럿 케이크를 다른 각도에서. 투명 컵 안에 크림치즈 층과 당근 시트 층이 선명하게 보이고, 위에 호두, 아몬드, 딸기, 로즈마리가 올라가 있어요. 재료를 보면 덴마크산 오가닉 치즈에 견과류도 종류별로 골라 올리고 허브 장식까지 들어갔으니, 비싸긴 해도 싼 재료로 때운 느낌은 전혀 아니에요.
에어컨 실내 좌석

더위에 약하다면 이쪽도 있어요. 본관 안쪽에 에어컨이 나오는 실내 좌석이에요. 갈색 가죽 소파, 패브릭 소파, 나무 트리 패턴 쿠션. 초록색 철제 프레임 창문 너머로 정원이 보이고, 유리 테이블 위에 "NO.4" 좌석 번호 팻말이 놓여 있었어요. 좌석이 많지는 않아요. 나는 여기 안 앉았어요. 에어컨 맞으러 여기까지 40분을 달려온 건 아니니까.
태국 라용 카페에서 165바트가 비싼 걸까



비싸요. 솔직히 비싸요. 근데 이상한 게 있어요. 여기 야외에 앉아 있으면 그게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덩굴이 지붕까지 올라간 철제 구조물 아래에서 바람 맞고 있고, 옆에 이름 모를 열대 꽃이 피어 있고, 멀리서 태국어로 뭐라 이야기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요. 이건 돈으로 만들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에요. 태국이라는 나라의 기후와 문화가 오래 스며든 공간이에요.
허니콤 케이크를 먹었습니다



허니콤 케이크를 잘랐어요. 한 입 먹었는데, 이건 진리예요. 위쪽 치즈 부분이 부드럽고, 아래쪽은 살짝 매트한 식감인데 촉촉해요. 입 안에서 두 층이 섞이는 밸런스가 정확하게 맞아요. 한국에서도 치즈케이크를 많이 먹어봤는데, 여기 것은 결이 달랐어요. 태국에서 살면서 좋았던 게 이런 거예요. 한국에서는 만날 수 없는 조합의 디저트를 동네 카페에서 만나는 순간. 가이드북에 없는, 검색해도 잘 안 나오는 곳에서 예상 밖의 맛을 발견하는 그때가 외국 생활의 진짜 행복이에요.

먹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외국 사람이 한국에 와서 한국 특유의 감성 카페에 앉으면 아마 정확히 이런 기분이겠구나. "이건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못 느끼는 건데?" 하는 그 감각. 여행에서 카페가 주는 행복이란 게 결국 그런 거 아닐까요. 내가 사는 곳에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공간에 잠깐 들어가 보는 것. 그래서 비싸도 가고, 멀어도 가고, 문 닫아도 기억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벌집 꿀 클로즈업

허니콤 케이크 위에 올라가 있던 벌집을 가까이서 찍었어요. 꿀이 셀 사이사이에서 흘러내리고 있어요. 장식용으로 얇게 자른 게 아니라 진짜 벌집 한 덩어리를 통째로 올린 거예요. 손가락으로 들어 올리니까 꿀이 주르륵 흘러서 손이 엉망이 됐는데, 그게 싫지 않았어요. 한국 카페에서도 허니콤 토핑을 올리는 데가 있긴 한데, 이 정도 두께를 이 가격에 올려주는 건 본 적 없어요.
안찬 음료 — 솔직히 맛은 별로였어요


안찬(อัญชัน, butterfly pea flower)이 통째로 올라간 음료를 시켰어요. 보라색 꽃잎 사이에 블루베리가 박혀 있고, 판다누스 잎이 삐죽 솟아 있는데, 음료인지 꽃꽂이인지 헷갈릴 정도의 비주얼이에요.
솔직히 말하면, 맛은 소다에 시럽 탄 거예요. 딱 그 맛이에요. 달고, 탄산 있고, 꽃향은 거의 안 느껴져요. 이게 한국 카페에 있었어도 맛만 놓고 보면 재주문은 안 했을 거예요. 근데 이걸 이 정원에서, 구름 낀 오후에, 이 비주얼로 받아 들면 그냥 기분이 좋아요. 맛으로 마시는 음료가 아니라 눈으로 마시는 음료. 여기서의 안찬 음료는 그런 거예요. 맛에 기대를 걸면 실망할 수 있으니까 미리 써둬요.

컵 전체가 보이는 각도로 찍어봤는데, 위에서부터 보라색, 중간에 오렌지색, 아래쪽 옅은 노란색으로 층이 자연스럽게 나뉘어요. 컵에 청록색 "THE CREEPER HOUSE — Cafe · Garden · House Plant"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나무 데크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니까 뒤로 분홍빛 초록 잎사귀가 배경을 채워줘요. 따로 포토존을 만들 필요가 없는 카페예요.

그래서 장난삼아 카페 옆 덤불 사이에 컵을 슬쩍 끼워놨어요. 진짜로요. 보라색 꽃과 초록 잎이 어우러져서 마치 여기서 자란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이 카페는 어디에 가져다 놔도 배경이 돼요. 배경을 고를 필요가 없는 카페는 여기가 처음이었어요.
카라멜 마끼아또


같이 간 와이프가 시킨 카라멜 마끼아또. 뚜껑 너머로 보이는 색감이 진했어요. 태국 카페 커피는 원래 좀 진한 편인데, 여기도 마찬가지였어요. 얼음 사이로 카라멜이 섞이면서 갈색 그라데이션이 생기길래 뚜껑 열기 전에 한 장, 열고 한 장 찍었어요. 맛은 달달한데 커피 자체가 세서 단맛에 묻히지 않았어요.
더 크리퍼 하우스 정원 산책


다시 밖으로 나왔어요. 하얀 자갈길이 건물 사이를 이어주는데, 양쪽으로 열대 관목이 빼곡해서 길이라기보다 산책로예요. 입구 쪽에서 찍으면 정원 전체가 한 프레임에 들어오고, 반대편에서 찍으면 가로등과 돌 화단, 뒤쪽 건물 지붕선까지 레이어가 겹겹이 생겨요. 이곳은 정원이 먼저 있고 그 안에 카페가 들어간 구조예요. 만든 정원이 아니라 자란 정원.
노란 벽, 초록 덩굴, 빨간 문 — Into the Garden


노란 외벽에 빨간 문틀, 그 위를 덩굴이 반쯤 덮고 있는 건물이 하나 더 있었어요. 유리창에 "Into the Garden"이라고 손글씨가 적혀 있고, 문 위에는 "CREEPER HOUSE" 낡은 나무 간판. 문을 열면 라탄 의자와 원목 테이블, 천장에 에디슨 전구가 줄줄이 매달려 있고 구석에 큰 화분이 놓여 있어요. 빨간 문틀 너머로 안쪽을 들여다보듯 찍은 사진이 분위기가 제일 잘 나왔어요. 노란 벽, 초록 덩굴, 빨간 문. 이 색 조합은 태국이니까 가능한 거라고 생각해요.
메뉴판 디자인과 소품 디테일



입구 쪽 철제 스탠드에 메뉴판이 나무집게로 주렁주렁 걸려 있었는데, 이것도 그냥 못 지나쳐요. "COFFEE — GET READY TO ENJOY!" 카드 옆에 "GARDEN SODA" 시그니처 음료 카드, Snow Pink, Galaxy Deep, Love Aden 같은 이름들. "HAPPY DAY MILK" 카드까지. 그리고 카운터 위 팁 박스가 하얀 미니어처 집 모양인데, 지붕에 연필로 벽돌 무늬랑 나뭇잎을 그려놨고 굴뚝 구멍으로 동전을 넣게 되어 있었어요. 소품 하나까지 이 정도로 신경 쓴 카페는 많지 않아요.
방문했을 때 손님은 대부분 태국 현지인이었어요. 외국인은 한두 팀 정도 있었는데, 나중에 찍어둔 영상을 다시 보면서 알게 됐어요. 라용의 이런 로컬 카페에 외국인이 앉아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어떻게 찾아온 걸까. 아마 나처럼 누군가의 추천이었겠지요.
한 시간 정도 있다가 나왔어요. 오래 있진 않았는데 기억은 오래 남았어요.
더 크리퍼 하우스(The Creeper House) 방문 정보
주소: 34, 8 ถนนสาย 11, Map Kha, Nikhom Phatthana District, Rayong 21180, Thailand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 (화요일 휴무)
시그니처 케이크: 165~175바트 (약 $4.5~5 USD)
음료 가격: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요
연락처: 092-927-7200 (คุณเฟิร์น)
현재 구글 지도에 임시휴업(temporarily closed)으로 표시되어 있어요. 방문 전 반드시 확인하세요.
마무리
임시휴업이라는 문구가 언제 바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갔을 때 그곳은 분명히 살아 있었어요. 비싸다고 느꼈고, 안찬 음료는 솔직히 별로였고, 운전해서 가는 길도 편하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사진을 꺼내 보면 또 가고 싶어져요. 다시 문을 열면 또 40분 운전해서 갈 거예요. 손에 꿀 묻히면서 벌집 뜯어먹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