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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2026년 4월 8일 13:19

더 이상 탈 수 없는 타이항공 747-400 로열 퍼스트 클래스 | 인천-방콕 TG659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보잉 747-400#인천 방콕 항공권
약 9 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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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TG659편. 타이항공 보잉 747-400 로열 퍼스트 클래스. 인천에서 방콕까지, 좌석 2K. 돔 페리뇽, 리모와 어메니티 키트, 풀플랫 시트, 코스 기내식. 이 비행기는 2020년 3월 마지막 상업 비행을 끝으로 퇴역했습니다. 더 이상 누구도 탈 수 없는 비행기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좌석에 대한 기록입니다.

170만원짜리 퍼스트클래스, 그날의 선택

그해 추석연휴가 유난히 길었습니다. 10월 초, 황금연휴. 인천에서 방콕으로 가는 항공권을 찾고 있었는데, 대한항공 이코노미 왕복이 130만원까지 올라가 있었습니다. 추석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기려다가,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가 170만원대로 떠 있는 걸 봤습니다. 평소 200만원대 후반이던 좌석입니다.

40만원을 더 내면 이코노미 대신 퍼스트클래스. 고민이랄 게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가성비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비행기에서 내리면 인생에서 처음으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는 날이었거든요. 특별한 날이니까, 특별한 좌석을 골랐습니다. 그게 생애 첫 퍼스트클래스가 됐습니다.

타이항공은 인천공항에서 아시아나항공 퍼스트클래스 라운지를 사용합니다. 라운지도 리뷰하고 싶었는데, 너무 오래전이라 사진이 하나도 안 남아 있습니다. 이 글은 기내 탑승부터 시작합니다.

TG659 · 인천 → 방콕 수완나품

보잉 747-400 · 로열 퍼스트 클래스 · 좌석 2K

시트 피치 76인치 · 180도 풀플랫 · 9석 배치

2017년 10월 · 오전 10시경 출발 · 비행시간 약 5시간 50분

보잉 747-400 리트로핏 퍼스트클래스, 첫인상

타이항공 보잉 747-400 로열 퍼스트 클래스 캐빈 내부, 2012년 리트로핏 9석 스위트 배치

보잉 747-400은 1960년대 설계에서 출발한 기종입니다. 그런데 이 캐빈은 그 사실을 믿기 어려웠습니다. 타이항공이 2012년에 퍼스트클래스를 전면 리트로핏하면서 기존 10석을 9석으로 줄이고, 좌석마다 파티션을 세워 독립된 스위트로 바꿔놓은 버전입니다. 23인치 모니터, 우드 톤 콘솔, 좌석 옆에 생화 난초 한 송이. 낡은 비행기에 대한 기대가 낮았던 만큼, 자리에 앉는 순간 통째로 뒤집어졌습니다.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23인치 IFE 모니터에 태국어 환영 문구와 난초 모티브 인터페이스

모니터에 태국어 환영 문구가 떠 있습니다. 난초 모티브에 보라색과 금색 구름이 깔린 화면. 옆에 꽂혀 있는 진짜 난초와 톤이 맞더라고요. 태국 항공사가 아니면 안 나오는 감성입니다.

웰컴 드링크와 승무원의 영어

타이항공 로열 퍼스트 클래스 웰컴 드링크 사과주스와 따뜻한 물수건, 우드 톤 콘솔 위 세팅

자리에 앉자마자 승무원이 웰컴 드링크를 권했습니다. 뭐가 있냐고 물으니까 메뉴를 읊어줘서 사과주스를 골랐고, 따뜻한 물수건과 함께 콘솔 위에 세팅해줬습니다. 이 승무원 영어가 좀 놀라웠습니다. 태국식 억양이 거의 없었어요. 미국인인가 싶을 만큼 발음이 깔끔했는데, 타이항공 로열 퍼스트 클래스 담당은 확실히 다른 사람을 배치하는구나 싶었습니다.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좌석 2K 창가에서 본 인천공항 계류장 파노라마, 창문 4~5개 독점

창문을 혼자 4~5개 씁니다. 이코노미에서는 옆사람이랑 하나를 눈치 보며 나누는데, 여기는 인천공항 계류장이 파노라마로 들어옵니다. 몇 시간 뒤면 사람을 만나러 내려야 하는데, 그 전까지 이 풍경은 온전히 제 겁니다.

좌석 컨트롤러와 담요

타이항공 747-400 퍼스트클래스 암레스트 터치스크린 컨트롤러, THAI 로고와 태국 전통 문양

좌석 암레스트에 터치스크린 컨트롤러가 내장돼 있습니다. 타이항공 로고와 태국 전통 문양이 표시된 화면에서 리클라인, 조명, 모니터를 전부 조작할 수 있고, 하단에 물리 버튼도 달려 있습니다.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좌석 포지션 선택 화면, 이륙 모드 식사 모드 수면 모드 아이콘 프리셋

터치스크린을 누르면 좌석 포지션 화면이 나옵니다. 이륙 모드, 식사 모드, 수면 모드, 독서 조명. 아이콘으로 돼 있어서 직관적이긴 한데, 2012년에 설치된 패널이라 해상도가 요즘 기준으론 좀 아쉽습니다. 23인치 메인 모니터 옆에 놓고 보면 세대 차이가 느껴집니다.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금색 담요 비닐 포장 상태, THAI 로고와 관리 번호 인쇄

담요는 개별 비닐 포장. 타이항공 로고와 관리 번호가 찍힌 금색인데, 포장 상태에서도 무게감이 느껴질 만큼 두꺼웠습니다.

메뉴북과 와인 리스트

타이항공 로열 퍼스트 클래스 가죽 커버 메뉴북 표지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메뉴북 와인 리스트 페이지, 돔 페리뇽 빈티지 2006 포함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메뉴북 음료 리스트, 위스키 진 맥주 페이지

가죽 커버 메뉴북이 나왔습니다. 음료와 식사 섹션이 나뉘어 있고, 와인 리스트가 꽤 두꺼웠습니다.

샴페인 — 돔 페리뇽 빈티지 2006

화이트 — 게뷔르츠트라미너 그랑 크뤼 2012, 샤블리 그랑 크뤼 발뮈르 2008

레드 — 생테밀리옹 그랑 크뤼 샤토 다소 2012, 메르퀴레 프르미에 크뤼 2013

주류 — 조니 워커 블루 라벨, 봄베이 사파이어

맥주 — 싱하, 창, 하이네켄

인천-방콕 5시간 남짓 노선에 이 정도면 장거리 못지않은 구성입니다.

기내식 메뉴판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기내식 메뉴판 Seoul Bangkok 노선 전용, 태국식 양식 한식 3종 선택

기내식 메뉴판 상단에 Seoul - Bangkok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노선마다 메뉴를 따로 짭니다.

태국식 — 새우 그린커리를 채운 오징어

양식 — 스펙 햄에 감싼 포크 메달리온, 뇨끼

한식 — 불고기, 김치볶음밥

출발지가 인천인 노선이라 한식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디저트에는 태국 전통 코코넛 푸딩 타꿈도 있었습니다.

코스 전체 순서

웰컴 드링크 → 치킨 사테 → 퍼스트 코스 전채 7종 → 빵 바스켓 → 바질 토마토 수프 → 메인 (3종 택 1) → 프루트 & 치즈 플래터 → 스페셜 드링크 → 태국 전통 디저트 3종 + 커피 → 코코넛 셔벗 & 열대 과일

인천-방콕 5시간 50분 노선 기준. 이 전체가 쉬지 않고 나옵니다.

리모와 어메니티 키트

타이항공 로열 퍼스트 클래스 리모와 어메니티 키트, 캐리어 모양 미니 파우치 비닐 포장

어메니티 키트. 리모와 캐리어 모양 미니 파우치입니다. 타이항공 로고가 박혀 있고, 비닐을 뜯는 순간부터 쓰고 버릴 물건이 아니라는 게 느껴졌습니다. 지금도 집에서 소품 파우치로 쓰고 있습니다.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리모와 어메니티 키트 내용물, 에비앙 미스트 칫솔 치약 양말 볼펜

안에 에비앙 페이셜 미스트, 칫솔·치약 세트, 양말, 볼펜. 기내에서 쓸 건 전부 들어 있었습니다.

이륙, 그리고 5시간이 아쉬운 비행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23인치 모니터 에어쇼 화면, 인천 출발 방콕까지 3628km 표시

이륙. 모니터에 에어쇼가 뜨고, 방콕까지 3,628km. 인천을 벗어나 남쪽으로 내려가는 항적이 보입니다.

이 5시간이 20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착하면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긴장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이 좌석에서 조금 더 마음을 고르고 싶었습니다.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와인 카트 서비스, 아이스 버킷에 돔 페리뇽 샴페인과 레드 화이트 와인

이륙 후 승무원이 와인 카트를 끌고 왔습니다. 아이스 버킷에 샴페인, 레드, 화이트가 가득. 저는 술을 못 마셔서 사진만 찍었습니다. 돔 페리뇽을 눈앞에 두고 마시지 못하는 게 이날의 유일한 아쉬움이었습니다.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시트 피치 76인치 다리를 완전히 뻗은 모습, 슬리퍼 착용 금색 이불

슬리퍼를 신고 다리를 뻗어봤습니다. 시트 피치 76인치. 발끝이 앞 벽면에 닿지 않습니다. 이코노미가 보통 31~32인치니까 두 배가 넘습니다. 금색 이불 위로 다리를 올리고 창밖을 보고 있으면, 긴장이 좀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퍼스트클래스 기내식 — 코스 요리의 시작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기내식 첫 코스 치킨 사테, 금테 접시 위 개별 서빙

첫 음식. 치킨 사테. 비즈니스에서는 트레이 하나에 여러 가지를 올려서 한 번에 끝내는데, 여기는 접시 하나에 한 메뉴씩, 천천히 나옵니다. 코스 요리 그 자체였습니다.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승무원이 승객 사진을 직접 찍어주는 모습

반대편 좌석 승객에게 승무원이 먼저 "사진 찍어드릴까요?" 하고 다가갔습니다. 폰을 받아서 직접 찍어줬습니다. 이 사람들의 미소가 달랐습니다. 업무적으로 짓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즐기면서 하는 느낌. 태국을 미소의 나라라고 하는데, 그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이날 처음 알았습니다.

테이블 세팅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남자 승무원이 벽면에서 우드 접이식 테이블을 꺼내 펼치는 모습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접이식 우드 테이블이 완전히 펼쳐진 상태

남자 승무원이 벽면에서 테이블을 꺼내 펼쳐줬습니다. 접이식인데 다 펼치면 크기가 상당합니다.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여자 승무원이 테이블 위에 흰색 식탁보를 깔아주는 장면

바로 이어서 여자 승무원이 흰색 식탁보를 깔아줬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테이블보를 까는 걸 처음 봤습니다.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퍼스트 코스 전체 세팅, 흰 식탁보 위 금테 접시 은색 커트러리 빵 바스켓 와인잔

퍼스트 코스가 세팅된 전체 모습. 흰 식탁보 위에 금테 접시, 은색 커트러리, 빵 바스켓, 버터, 소금·후추. 와인잔 하나. 술을 못 마신다고 했는데 승무원이 이 요리에는 이게 맞는다며 한 잔만 권해서 받았습니다.

퍼스트 코스와 수프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퍼스트 코스 전채 7종 플레이팅, 바나나 잎 위 꼬치 치킨 연근 장어말이 새우 케이크

퍼스트 코스 접시. 꼬치 치킨, 식초 절임 연근, 우엉 장어말이, 아몬드 새우 케이크, 에그 케이크, 일본식 토란 미소 그릴. 바나나 잎 위에 하나씩 올려놓은 플레이팅이 태국 고급 레스토랑 수준이었고, 소볼에는 식초 해산물 샐러드. 태국식에 일식을 섞은 퓨전인데, 기내식 특유의 눅눅함이 없었고 맛이 또렷했습니다. 양이 적다고 느꼈는데, 이게 시작이었을 뿐입니다.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빵 바스켓, 통밀 롤 브리오슈 그리시니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마늘빵, 버터와 허브가 스며든 바삭한 상태

빵 바스켓에 통밀 롤, 브리오슈, 그리시니. 따뜻한 상태로 나왔습니다. 그중에서 마늘빵이 역대급이었습니다. 버터와 허브가 충분히 배어서 바삭하게 구워져 있었는데, 기내식 빵 기준으로 이 정도는 처음이었습니다.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바질 토마토 수프, 진한 농도의 붉은 수프

바질 토마토 수프. 토마토 산미와 바질 향이 섞인 진한 농도. 걸쭉한데 넘김은 부드럽습니다. 앞에 나온 코스의 여러 맛을 한번 정리해주는 느낌. 마늘빵을 찍어 먹으면 딱이었습니다.

메인 코스 — 포크 메달리온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메인 코스 그릴드 포크 메달리온 스펙 햄, 뇨끼 아스파라거스 체리 토마토 금테 접시

메인입니다. 세 가지 중 양식을 골랐습니다. 돼지고기 안심을 이탈리아식 훈제 생햄 스펙으로 감싸 그릴한 건데, 포메리 볼레투스 소스가 곁들여져 있고 감자 뇨끼, 소테 아스파라거스, 그릴드 체리 토마토가 함께 나왔습니다.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포크 메달리온 단면 클로즈업, 스펙 햄이 감싼 촉촉한 안심 육즙

단면. 스펙이 고기를 꽉 감싸고 있어서 육즙이 안에 잡혀 있습니다. 칼을 넣으면 안쪽이 촉촉하고, 훈연향이 돼지고기의 담백함이랑 잘 맞습니다. 다만 소금이 좀 셌습니다. 스펙 자체가 짠 편이라 소스 없이 먹으면 간이 꽤 강하게 올라옵니다.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메인 코스 가니시, 바삭한 감자 뇨끼와 소테 아스파라거스 체리 토마토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포메리 볼레투스 소스 클로즈업, 포르치니 버섯과 머스터드 베이스

뇨끼는 겉을 구워 바삭하게 냈고, 아스파라거스는 아삭함을 살려놨습니다. 체리 토마토를 터뜨리면 산미가 퍼지면서 짠맛을 좀 잡아줍니다. 소스는 포메리 머스터드와 포르치니 버섯 베이스. 머스터드의 은은한 톡 쏘는 맛과 포르치니 감칠맛이 같이 올라와서, 짠 고기에 얹으면 밸런스가 맞았습니다.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메인 코스 전체 모습 창가 자연광, 금테 접시 위 색감 배치

창가에서 찍은 메인 전체. 자연광이 들어와서 색감이 선명합니다. 갈색, 녹색, 노란색, 빨간색. 금테 접시 위에 색 배치가 정돈돼 있었습니다.

후식, 그리고 행복한 고민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프루트 치즈 플래터, 포멜로 코끼리 조각 멜론 사과 배 블루치즈 브리 체다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과일 플래터 클로즈업, 태국 전통 과일 조각 기법으로 깎은 코끼리 모양 멜론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치즈 플래터 클로즈업, 블루치즈 브리 체다 셀러리 당근 스틱

프루트 & 치즈 플래터. 포멜로, 멜론, 사과, 배가 한쪽에, 블루 치즈, 브리, 체다가 셀러리·당근 스틱과 함께 반대쪽에. 멜론이 코끼리 모양으로 깎여 있었는데, 태국 전통 과일 조각 기법입니다.

솔직히 이 시점에서 배가 터질 것 같았습니다. 사테부터 수프, 빵, 메인까지 쉬지 않고 나왔는데 양이 장난이 아니었거든요. 170만원짜리 특가로 이걸 받고 있으니 남기기가 아까운데, 더 먹기도 힘든.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스페셜 드링크 오렌지주스, 샴페인 플루트 잔 우드 콘솔 위 세팅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콘솔 위 플루트 잔과 IFE 화면, 창밖 햇빛이 들어오는 좌석 전경

다 먹고 쉬고 있으니까 승무원이 스페셜 드링크라며 또 가져왔습니다. 플루트 잔에 담긴 오렌지주스. 콘솔 위에 아까 권유받아 한 잔 따라두고 안 마신 레드 와인잔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술을 못 마시는 사람한테도 와인을 한번 권하고, 안 마시는 것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또 음료를 얹어주는. 타이항공 로열 퍼스트 클래스는 끝까지 무언가를 내줍니다.

태국 전통 디저트와 커피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마지막 디저트 코스 금테 접시 위 태국 전통 과자 3종과 커피

마지막 코스. 금테 접시에 태국 전통 과자 세 종류와 커피.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카놈 사이 바나나 잎 포장, 코코넛 밀크 판단 잎 향 태국 전통 찐 디저트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코코넛 푸딩과 커스터드 체리 미니 타르트, 투명 컵과 타르트 쉘

바나나 잎에 싸인 노란색은 카놈 사이. 코코넛 밀크와 판단 잎 향이 밴 태국식 찐 디저트. 투명 컵은 코코넛 푸딩인데 솔직히 좀 밋밋했습니다. 단맛이 약해서 디저트보다는 간식에 가까운 느낌. 미니 타르트는 커스터드에 체리를 올린 건데, 바삭한 쉘과 커스터드의 대비가 좋았습니다. 카놈 사이는 판단 잎 향에 익숙하지 않으면 호불호가 있을 것 같습니다.

태국 전통 디저트와 서양식 타르트가 한 접시에 올라간 게, 이 비행기 기내식 전체를 관통하는 컨셉이었습니다. 태국, 서양, 한국을 섞되 맛은 흐리지 않는.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식후 블랙커피, 금테 소서 위 도자기 잔

식후 커피. 금테 소서 위 도자기 잔에 블랙커피. 맛은 평범합니다. 비행기 커피가 원래 그렇습니다. 다만 잔과 소서 덕분에 분위기는 됩니다.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기내 비치 에비앙 500ml, 태국어 라벨 현지 유통 버전 풀플랫 시트 배경

기내 비치 물도 에비앙 500ml. 라벨에 태국어가 함께 적힌 현지 유통 버전입니다.

풀플랫,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주는 서비스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180도 풀플랫 시트에 금색 이불을 덮고 누운 모습, 승무원이 촬영

식사가 끝나고 한참 뒤에 시트를 풀플랫으로 눕혔습니다. 180도 풀플랫을 인생에서 처음 경험한 순간. 좌석이 아니라 침대입니다. 금색 이불을 덮고 리모컨을 한 손에 들고 누워 있는 모습을 승무원이 찍어줬습니다.

몇 시간 뒤면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이 이불 속이 너무 편해서 긴장이 잠깐 잊혀졌습니다.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승무원이 창문 쉐이드를 하나씩 내려주는 장면, 요청 없이 먼저 서비스

누워 있으니까 승무원이 다가와서 창문 쉐이드를 하나씩 내려줬습니다. 부탁한 적 없습니다. 창문이 4~5개나 되니까 일어나서 일일이 내리려면 번거로운 건데, 그걸 먼저 해줍니다.

화려한 식기나 코스 요리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주는 이 한 동작. 이 비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하나만 고르라면, 이겁니다.

방콕까지 남은 시간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기내 조명 소등 상태, 23인치 에어쇼 화면만 빛나는 캐빈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에어쇼 화면 베트남 상공 통과, 파티션 스위트 안에서 누운 시점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소등된 캐빈 전체, 금색 이불과 에어쇼 화면

기내 조명이 전부 꺼졌습니다. 23인치 모니터의 에어쇼만 은은하게 빛나고, 화면 속 비행기는 이미 베트남 상공을 넘어 방콕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에어쇼 화면 다낭 부근 상공, 방콕까지 잔여 거리 1120km 도착 예정 13시 10분

눈을 떠보니 에어쇼에 비행기가 다낭 부근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방콕까지 1,120km, 도착 예정 13시 10분. 아직 2시간 가까이.

빨리 가고 싶은 비행이 아니었습니다.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코코넛 셔벗과 열대 과일 아이스크림, 유리잔에 파인애플 드래곤프루트 망고 자몽

눈을 뜨자마자 승무원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왔습니다. 일어난 걸 어떻게 알았는지. 유리잔에 코코넛 셔벗 한 스쿱, 주위로 파인애플, 드래곤프루트, 망고, 자몽이 쌓여 있고, 물수건까지 세팅. 배가 아직도 부른데, 또 줍니다.

타이항공 퍼스트클래스 에어쇼 화면 방콕 도착 직전, 모니터 옆 생화 난초가 싱싱한 상태

에어쇼 화면에 비행기가 방콕 바로 위에 있었습니다. 도착까지 10분도 안 남았습니다. 모니터 옆 생화 난초가 여전히 싱싱한 채로 꽂혀 있었습니다.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왕복이니까요. 돌아오는 비행에서 이 좌석을 한 번 더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아쉬움 반 기대 반이었습니다.

수완나품, 5시간 50분의 끝

방콕 수완나품 국제공항 도착, 탑승교를 걸어 나오는 순간

수완나품 공항. 탑승교를 걸어 나왔습니다.

이 비행기는 더 이상 없습니다

타이항공 보잉 747-400의 마지막 상업 비행은 2020년 3월 26일, 시드니발 방콕행 TG476편이었습니다. 2024년 4월, 전 기체의 퇴역 절차가 완료됐습니다.

지금 같은 인천-방콕 TG659편을 타면 A350-900 로열 실크가 최상위 클래스이고, 퍼스트클래스 자체가 없습니다.

더 많은 사진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2017년 데이터라 전부 남아 있지는 않아서 여기까지입니다.

이 비행이 있고 2년 뒤, 대한항공 보잉 747-8i 프레스티지 클래스를 타게 됩니다. 그 이야기는 따로 쓰겠습니다.

타이항공 보잉 747-400 로열 퍼스트 클래스. 9석뿐인 캐빈, 바나나 잎 위에 올라온 전채, 코끼리 모양으로 깎은 멜론, 부탁하지 않았는데 내려준 창문 쉐이드. 170만원짜리 특가였고, 처음 아내를 만나러 가는 비행이었습니다. 비행기는 퇴역했고, 그 좌석은 이제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날 오전 10시에 인천을 떠나면서 느꼈던 긴장과 설렘, 풀플랫에 누워서 잠깐 잊었던 그 감각은 사진이 아니라 몸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제 인생 최고의 비행입니다.

작성일 2026년 4월 8일 13:19
수정일 2026년 4월 8일 13:20